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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의 농한기
    [글쓴이 야초 한찬동] 농한기에 가마니 짜던 시절이 있었다. 우선 볏짚을 추려 메로 친다. 부드러워진 짚을 물에 축여서 새끼를 꼰다. 이제 가마니틀에 새끼를 걸치고 짚을 넣어가며 가마니를 짜는데, 그 절커덕거리는 소리가 밤이 깊도록 계속됐었다. 이런 겨울 풍경에는 찹쌀떡과 메밀묵이 정겨움을 더하였다, 한가한 어른들은 부잣집 사랑방에서 화투를 즐겼다. 가끔 노름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고작해야 막걸리 한 사발 내는 정도로 그냥 놀이였다. 이때 그 특유의 사내 목청이 들려오면 개평을 모아 찹쌀떡과 메밀묵을 사 먹었다. 그러나 그도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어서, 그 동짓달 긴긴밤은 으레 반 쯤 언 동치미 국물과 삶은 고구마로 메꾸어지곤 했다. 요새는 아예 농한기란 말이 없어진 것 같다. 워낙 시설채소를 많이 하고 가축을 사육하는 농가도 많다 보니 겨울에도 일거리가 적지 않다. 특히 전국적으로 재배가 확대되고 있는 딸기는 겨울철 대표 과실 채소가 되었다, 제때 수확을 해야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딸기가 익을 무렵에는 늘 일손이 달린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놉을 얻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물론 늘 쪼들리는 농촌에서 그나마 돈벌이가 되니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농촌이 어렵고 여유가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위해 고령층까지 사시사철 노동을 해야 하는 이 현실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근력 떨어진 노인들이 추위 속에서 하시기엔 너무 벅차다. 아니 이제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편찮으신 어른들이 너무 많다. 잔뜩 굽은 등허리로 보행기에 의지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이 아닌가? 비록 돈이 목적이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그래서 고마운 분들이다. 심각한 농촌의 일손 부족을 그들이 메우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보다 훨씬 못 먹고 못 살았던 옛날이 왜 더 여유롭게 보였을까? 욕심 탓이다. 풍요는 탐욕을 부른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먹으면 더 갈증이 나듯이, 내 부족을 메우려는 욕망이 결국은 욕구불만을 초래하고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현대 문명이 그랬고 자본주의가 그랬다. 농촌 근대화가 그랬고 물질 지상주의가 그랬다. 지금 와서 떠드는 탄소중립이니, 탈탄소화니 하는 것이 부질없고 어리석고 때늦어 보이는 이유다. 지구 온난화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지 않은가? 이제 비닐하우스 그만 지었으면 좋겠다. 소, 돼지 그만 먹였으면 좋겠다.논밭 더 이상 메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아파트 안 지었으면 좋겠다. 산업공단도 더 안 넓혔으면 좋겠다. 양로원, 요양시설, 재가센터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스팔트 도로 더는 안 내었으면 좋겠다. 잘 나가는 차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부디 선거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텔레비전, 신문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는 애국자들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눈발 날리는 날, 뒷짐 지고, 그냥 보리밟기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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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풀의 농사만사
    2022-12-11
  • 깻대를 태우며
    [글쓴이 야초 한찬동] 게으른 탓에 좀 늦게 들깨를 수확했다. 한 알이라도 떨구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낫을 잘 갈아 깨를 베었다. 줄기가 제법 실하여 은근히 풍성한 수확을 기대했으나 바람에 날려 까불러 보니 역시 시원치가 않았다. 양은 꽤 되는데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도 날씨 탓이란다. 가을 날씨가 좀 쌀쌀해야 깨도 번식을 위해 단단하게 씨앗을 여미는데 올해는 결실 무렵에 고온 현상이 나타나 씨알이 야무지지 못하다고 한다. 하는 농사마다 변변치가 못하여 또 누구에게 핀잔을 들을 게 뻔하지만, 그래도 깨를 털 때 맡게 되는 향긋함은 농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 충분하다. 들깨는 페릴라케톤과 페릴라알데히드라는 독특한 성분을 함유하여 특유의 향기가 난다. 이 향 때문에 고라니 같은 초식동물이나 다른 벌레가 접근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병충해도 적다. 굳이 피복을 안 해도 되고 제초작업을 덜 해도 무리가 없어 여러 작물 중 재배가 쉬운 편이다. 감자를 캐거나 참깨를 수확하고 나서 후작으로 많이 심는 이유다. 요즘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우울감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들깻잎의 활용이 늘고 있다. 쌈용은 물론 김치나 장아찌 등 여러 요리 재료로 쓰인다. 특히 생선회를 싸 먹으면 살균 효과가 있어 매우 유용하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들깨는 앞서 말 한대로, 그 향기가 치유의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식물자원이다. 내 경험으로는, 풀을 뽑기 위해 고랑에 들어서면 일단 그 향긋한 내음에 작업의 피로가 줄어든다. 꽃이 필 무렵에는 향이 더해져, 밭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며 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정화된다. 잎이 노랗게 물들어 깨를 털 때는 낱알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수확의 기쁨을 더한다. 옛날처럼 도리깨질을 해보면 회상으로 위안을 찾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털고 난 후, 농가에서는 흔히 밭에서 깻대를 태운다. 요즘은 산불 위험을 고려하여 자제하고 있지만, 밭 한 가운데 깻대를 가득 쌓아 놓고 불을 지르면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가 따로 없다. 기름기를 머금어 타기도 잘 타지만, 연기와 함께 피어나는 향기는 태워 본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일종의 호사이다. 저녁 무렵, 바깥 부뚜막에 밥솥을 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호사를 넘어 사치적 낭만이다. 어르신이 들으시면 참 한가한 소리 한다고 하실 테지만, 환한 불빛을 바라보며 맡는 불내는 마음에도 향기를 피워낸다. 우리 부모님들에게 농사는 자급자족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식을 위한 사랑이기도 했다. 여름엔 참깨, 가을엔 들깨 농사를 지어 작은 소주병에 참기름, 들기름을 담아 보내는 정성은 그 냄새처럼 진하고 진정으로 애틋하다. 받는 사람들은 돈 주고 사면 몇 푼 안되는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거기엔 자연의 축복과 사람의 성심이 함께 담겨 있다. 농사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인간을 배려하는 지혜의 철학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로써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사회의 상처를 덧나지 않게 하자는 농사 철학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오늘도 해 질 무렵, 깻대를 태우며,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깨알 하나, 깻대 한 줄기 만큼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과 위로가 되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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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풀의 농사만사
    2022-11-08
  • 호박꽃도 꽃이다.
    [글쓴이 야초 한찬동] 초여름부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던 호박이 아직도 힘차게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있다. 그 생명력은 가히 놀라워, 잡초를 무색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박은 한번 심어만 놓으면 거름주기, 병충해 방제 등 별도의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고 커다란 호박도 탐스럽게 열린다. 예로부터 담장 밑이나 척박한 언덕배기에 심어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이유도 이런 특유의 생장 능력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흔하게 여기는 호박이지만, 사실은 참 귀하고 고마운 작물이다. 우선 그 용도가 참으로 다양하다. 열매를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아도, 그 애호박은 여러 요리로 쓰인다. 된장국을 끓이거나 전을 부쳐 먹으면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여린 잎은 삶아서 쌈으로 먹는데, 지금은 추억의 맛이 되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꽃조차 요리에 쓰인다. 튀김이나 부침개를 해서 먹는데, 최근에는 TV 프로그램에 방영까지 되어 잘 알려졌다. 늙어서는 더 많은 쓰임새가 있다. 겨울에 우리의 허기를 채워주던 호박죽, 호박떡을 누가 모르랴. 조청과 호박엿도 그렇다. 심지어 호박은 그 씨앗도 먹거리가 되었다. 물론 옛날 이야기지만,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속담이 있듯이 남몰래 먹을 만큼 그 고소한 맛이 좋았다. 영양적으로도 비타민A가 풍부하여 간의 독을 풀어 준다. 베타카로틴이라는 색소는 항산화물질로서 피로 회복과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특히 이뇨작용이 있어 임산부들의 붓기를 빼는 데 전통적으로 이용되었다. 호박은 관련 속담도 많아, 우리 민족과 매우 친근한 과채이다. ‘호박이 넝쿨 채 들어온다.’는 속담은 여러 행운이 한꺼번에 닥친다는 기분 좋은 말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는 말은 진실을 숨긴 허위허식을 나무라는 교훈이다. 호박은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열매라고 한다. 현재 기록상 1천 킬로그램이 넘는다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좀 못나 보이고 순진한 사람을 호박같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오히려 호감 있는 사람을 호박(펌킨)에 비유한단다. 호박을 축제에 애용하는 등 그 가치를 알아주는 그곳과는 분명 문화적 차이가 있다. 이제 호박꽃을 좀 보자. 그게 보잘것없다고 ‘호박꽃도 꽃’이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정말 자세히 보면 여느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아침에 환하고 탐스럽게 핀 노란 꽃은 나리꽃에 비길만하다, 전설에 나오는 어느 스님의 황금종이 바로 호박꽃을 닮았다. 꽃말도 의미가 좋다. 관대함, 너그러움, 또는 사랑의 용기라고 한다. 충분히 너그럽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과감히 용기를 내는 호박꽃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도 호박꽃은 핀다. 다가오는 가을까지도 호박꽃은 또 필 것이다. 서로 바라만 봐야 하는 그 암수꽃들은 꿀벌의 도움을 받아 사랑을 나누고 2세를 가진다. 그 절제된 사랑도 호박꽃의 미덕이다. 우리는 언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꿀벌이 되어 보았는가? 호박꽃이라 비웃으며 아름다운 누군가를 외면하진 않았는가. 사람이든 그 어떤 생명체든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가?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모두가 존엄하고 위대하다. 호박꽃은 정말로 참말로 진실로 진짜로, 거짓 없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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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풀의 농사만사
    2022-08-19
  • 치유농업의 시대
    [글쓴 이 야초 한찬동] 농업이 식량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기능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가치다. 그러나 농촌이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국토를 안정시키면서 전통문화까지 계승·발전시킨다는 인식은 그렇게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먹을 것, 즉 쌀과 채소가 없으면 당장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농업은 그저 시골에서 먹고 살기 위한 가장 밑바닥 직업으로 알고 있다. 농촌살이가 워낙 불편하고 소득 창출이 어렵다 보니 모두가 도시로 향하고 이제 남은 것은 노인과 개뿐이라는 비아냥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멋들어진 말은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전원과 고향의 정서로 농촌을 그리워하는 것도 나이 든 사람들의 그저 한가한 생각일 뿐이다. 그동안 노력도 참 많이 했다. 농업·농촌·농민을 살려보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혁신 운운하며 떠들썩대기도 했다. 그 결과로 농민에게 수당도 주어지고 농업직불금이라는 제도도 생겼다. 귀농·귀촌 정책에 힘입어 소멸위기에 처한 농촌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6차산업이니 융복합산업이다 하여 농업인들은 정작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를 써가며 각종 진흥정책도 펼쳐왔다. 이러한 정부 시책으로 유행했던 것 중의 하나가 농촌 체험농장 또는 관광농원 사업이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이 물 맑고 공기 좋은 농촌에 내려와 여러 시골살이 체험을 하고 경치 구경도 하면서 그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농업의 부가적 소득증대를 꾀한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여러 농장들이 도시와 농촌의 가교 역할을 하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많이 식상한 느낌이 든다. 교통이 발달하고 개인의 취향이 고급화되면서 약간 시들해진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는 여기에 직격탄이 되었다. 여행이나 모임 자체가 통제되어 이를 운영하는 농업인들이 위기에 처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시작되어 농업농촌의 발전과 국민 복지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민의 건강 회복과 증진을 도모하여 사회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취지로 우리나라도 지난해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우울감이 팽배한 전국민과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예방과 치료, 재활의 프로그램을 농업에서 구현해 보자는 정책이다. 농업이 식량안보의 기능을 넘어 국민 건강의 파수꾼으로 차원을 높이려는 새로운 분야이다. 이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농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청년이나 신중년,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상 가운데 하나는 분명 치유농업이라고 믿는다. 지쳐서 힘들고 상처받아 괴로울 때 치유농장을 찾자. 내 가족 내 이웃이 아파할 때 치유농장에 함께 가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내일이 궁금하여 자신의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을 때 치유농장의 문을 두드리자. 거기엔 우리의 슬픔과 외로움, 고통을 나누어 가지며 다시 희망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아버지의 어깨 같은 농촌다움(어메니티*)이 있다. * ‘어메니티(amenity)’ : 어떤 환경이나 장소에서 쾌적함과 만족감을 주는 요소.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종합적인 쾌적함이라고 해석되며, 이를 ‘농촌다움’으로 순화하여 사용하고 있음.
    • 사설/칼럼
    • 들풀의 농사만사
    2022-07-04
  • 작은 감자꽃의 슬픔
    [글쓴 이 야초 한찬동]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잘 알려진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이라는 동시이다. 시에서처럼 감자는 꽃 색깔대로 덩이를 만든다. 그 덩이줄기가 바로 우리가 먹는 감자이다. 원산지는 페루, 볼리비아에 걸쳐 있는 안데스산맥이다. 16세기 무렵 스페인과 영국, 독일 등의 유럽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돼지나 먹는 것이라며 환영받지 못했지만, 이 때 유럽의 기근을 해결한 식량작물이 감자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마와 함께 대표적 구황작물로 꼽혔다. 조선 순조 24년에 만주 간도지방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중요시되는 식용작물이지만, 감자라는 이름은 그리 좋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못나고 미련해 보이는 것을 감자 같다고 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소화가 잘되며 비타민과 아미노산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특히 단백질 함량이 밀의 2배, 옥수수의 1.2배나 되는 귀중한 영양 공급원인데, 왠지 싸구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흔하기도 하지만, 모양이 그리 예쁘지 않고 요리를 잘 하지 않으면 맛도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감자꽃도 그렇다. 자세히 보면 여느 꽃 못지않게 예쁘지만, 감자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게 감자꽃이다. 불행하게도 이 꽃은 농부들에게까지 천대를 받는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수확 시기가 다가오는데, 이 때 꽃을 따서 버리는 것이다. 덩이줄기로 가야 하는 영양분을 꽃이 빼앗아 가는 까닭에 일부러 꽃 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서툰 초보 농부들은 제법 보기 좋은 감자꽃을 그냥 놔두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핀 하얀 꽃들은 청량한 이슬을 머금어 더욱 곱고 사랑스럽다. 실제로 건실하게 자란 감자에서 꽃도 많이 핀다. 농사가 잘 되었으니 마음이 뿌듯해져서 굳이 꽃을 따주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다가 십상은 이웃 어른들에게 핀잔을 듣는다. 저걸 그대로 두면 어쩌나. 얼른 따 줘야 감자가 실해지지. 그깟 꽃이 뭐 보기 좋다고. 하여간 사람이 게을러서 원. 하는 수 없이 고랑에 들어가 감자꽃을 딴다. 나름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무참히 꺾이고 여지없이 밟혀 진다. 같은 시기에 피어 모양도 비슷한 하얀 찔레꽃은 가시덤불 속에 핀 탓에 꺾이지 않는다. 토종도 아닌데, 이제는 곳곳마다 점령한 노란 금계국도 좀처럼 밟히는 일이 없다. 사람이나 꽃이나 처지에 따라 꺾이고 밟히는 게 세상사인가 보다. 누구나 스스로는 존귀하지만 타자에 의해서 그 존엄이 무너지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바르지 못한 저울과 잣대에 의하여 진실이 왜곡될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약한 자여! 어쩌겠는가? 이럴 때 유용한 방어기제가 있다. 짓밟히는 데 대한 합리화다. 나는 참는 게 아니라 희생하는 것이다. 사회와 타인을 위해 차라리 내가 죽어주마. 아마 내 손에 꺾여지는 감자꽃도 그렇게 스러졌을 것이다. 열매를 맺기는커녕 제때 지지도 못한 슬픈 꽃이여,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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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30
  • 조팝꽃 필 무렵
    [글쓴 이 야초 한찬동] 4월 중순 무렵이면 낮은 산자락이나 비탈밭 귀퉁이에 작고 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핀다. 좁쌀을 튀겨 모아 붙인 듯하다 하여 ‘조팝꽃’이라 불리는 꽃이다. 쌀밥을 가득 담은 것 같다는 ‘이팝꽃’과 함께, 곡식과 밥을 따서 이름 지어진 대표적인 꽃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우리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가운데 하나인 좁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지금이야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떡이나 별미의 먹거리를 만드는데 더 많이 쓰이지만, 그 찰진 밥맛은 찹쌀밥 못지않았다. 조는 척박한 땅에 잘 자라고 가뭄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넓고 기름진 땅을 가지지 못한 가난한 농부들이 주로 심었다. 그 낱알은 자디잘아서, 아주 작은 것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잘한 알갱이가 모아져 한 사발의 밥이 되고 기근에서 백성을 구했다. 조팝나무도 이를 닮았다. 산모퉁이나 밭둑에서 많이 자라고 그 꽃은 진달래, 개나리처럼 봄꽃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수백 수천 송이가 모여 만든 조팝꽃 다발은 눈부시기 그지없다. 서민을 배부르게 한 조밥처럼 꽃나들이 가는 사치를 누리지 못하는 농부의 마음을 환하게 밝혔다. 바로 이 조팝꽃이 필 무렵, 농부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가하게 꽃구경이나 할 처지가 못 된다. 논농사 밭농사를 일제히 서둘러야 한다. 해빙과 함께 무너진 논둑을 고치고 다져야 한다. 곧 곡우가 되니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도 준비한다. 겨울에 갈지 못한 논도 거름을 내어 갈아 두어야 한다. 밭에는 씨앗을 직접 뿌리거나 모종을 가꾸어야 할 때다. 나처럼 게으른 농부에겐 할 일이 더 많다. 지난해 가을에 심었던 마늘의 병충해 방제와 추비가 급하다. 지지난해에는 마늘에 뿌리응애가 발생하여 거의 수확을 못했다. 사람에게도 독한 마늘을 맛나게 갉아먹는 놈이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올해는 양보를 못하겠다.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사실 친환경·유기능은 이상에 가깝다. 현실은 꿈을 포기하게 만든다. 감자도 비닐멀칭을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 틈마저 비집고 올라오는 풀들이 도무지 호미를 겁내지 않는다. 오얏꽃, 살구꽃, 홍도화도 피어 보기는 좋지만, 이것도 그냥 두면 다 벌레들의 차지가 될 터이다. 일단 목초액을 뿌려 주었으나 탐스러운 과실이 맺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른 봄에 캐어 나물로 잘 먹었던 냉이는 이제 꽃을 피워 밭 전체를 덮을 기세다. 관리기를 사용해 갈아엎었건만, 잡초로서 그 위세는 대단하다. 다시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꽃피는 봄날, 농부는 과연 무슨 꿈을 꿀까? 가족과 함께 하는 꽃나들이를 그릴까, 벗들과 맛집을 찾아가는 여행을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그런 한가한 꿈은 으레 다른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길 게 틀림없다. 그 소망은 아마 내가 가꾼 작물들이 잘 자라서 풍성한 수확을 안기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사랑하는 자식들, 친척들, 친구들이 그 기쁨을 같이 나누며 하늘과 땅, 그리고 누군가의 땀에 고마워하는 어느 날의 따뜻한 밥상일 것이다. 조팝꽃의 꽃말은 허망하게도 ‘헛수고’, ‘하찮은 일’이란다. 무지렁이 농투성이의 마음을 고픈 배 채워주던 조밥처럼 위로해주는 그 꽃에 이리 보잘것없는 꽃말이라니 뭔가 잘못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따뜻한 위로’, ‘눈부신 환희’ 같은 게 어울릴 것 같다. 그렇다고 뭐, 농부가 그것인들 탓하랴. 지금 내 밭둑에 저리 찬란한 꽃이 흐드러져 있는 자체가 기쁨인 것을. 굳이 돈 들여 시간 들여 멀리 꽃구경 갈 일 있는가? 내 안에 내 곁에 다 있는데……
    • 사설/칼럼
    • 들풀의 농사만사
    20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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