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3(화)
 

황소.jpg

[글쓴이 야초 한찬동]

 

소가 웃을 일이라는 말은 하도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한낱 짐승까지 웃게 만드는 일이라는 뜻으로, 흔히 정치꾼들이 많이 쓴다. 그런데 이게 바로 소가 화날 일이다. 제깟 인간들이 소를 미련한 짐승으로 취급하여 낮추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아니 소()만도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그,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하는 패거리들 말이다. 이 말이야말로 실로 소가 웃을 소리인 것이다.

 

소는 결코 그런 일에 웃지 않는다. 웃는 게 아니라 아마 기가 차서 혀를 찰 것이다. 누가 소 웃는 걸 봤는가? 소는 쉽게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과묵과 우직함의 상징이다. 물론 사람이 표정으로 알 수 없어 그 속까지는 모르지만, 요즘의 소들을 보면 정말 웃을 일이 없어 보인다.

 

호랑이와 함께 우리 민족의 상징적 동물이기도 했던 소는, 특히 농촌에서 귀하디귀한 가축이었다. 집안의 1호 재산으로, 딸에게는 시집 갈 밑천이요, 공부 잘하는 아들에게는 학비 그 자체였다. 더구나 성격이 온순하여 일을 하는 암소는 집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쟁기질을 하고 수레를 끌고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날랐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를 정성으로 기르고 또한 가족처럼 섬겼다.

 

이런 소가 이제는 오로지 고깃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외양간이야 외형적 환경이 좋아졌다지만, 여간해서 그 축사를 나오기 어렵다. 평생 그 안에 묶여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감옥 아닌 감옥을 벗어난다. 물론 동물복지를 생각하여 방목을 하거나 수시로 우사 바깥으로 내보내 운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아주 드문 사례다.

 

사람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우리 안에 갇혀 사육되는, 그것도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단축된 삶을 살다 가는 소에게 인간의 예의라곤 없다. 그저 좋은 등급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사료를 주고 영양제를 먹일 뿐이다. 넓은 들에서 고삐 없는 소를 몰거나 언덕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기던 추억은 아니어도 조금이나마 소를 배려하고 존중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치유농업에 그 방법이 있다. 동물은 인간과 교감 능력이 뛰어나다. 오래전부터 가축으로 길들여져 사람과 같이 생활했던 개나 소는 더욱 그러하다. 반려동물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개나 고양이는 동물교감 치유의 대표가 되었다. 소는 덩치가 크고 위험 요소가 있어 집에서 반려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지만, 치유농장을 통해 교감의 상대가 될 수 있다.

 

온순한 성격과 친근한 이미지는 소의 장점이다. 실제로 소를 포옹하고 그 품에 안겨 치유의 효과를 본 사례가 있다. 마음에 상처가 큰 어느 여인이 소의 목덜미를 껴안고 한없이 울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안정을 되찾기도 했다. 넉넉한 소의 품이 어머니의 품속 같았으리라.

 

아마, 여인과 따뜻하게 한 몸이 되었던 그 소는 여인이 자기 품속을 벗어난 후, 흐뭇하게 웃었을 것이다. 소 자신도 훈훈한 인간의 체취를 느끼며 행복했을 것이다. 소가 웃는 날은 이렇게 가능하다. 전 생애 동안 일만 하다 죽거나, 고깃덩어리로 팔리는 비참한 삶에서, 누군가의 아픔을 감싸주고 더불어 울고 웃을 수 있는 소들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백이 황소, 아니 황혼빛 행복한 미소를 짓는 누런 암소가 보고 싶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5389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소가 웃는 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