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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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의 문화생활
    [글쓴이 야초 한찬동] ‘문화’를 한자로는 글월 문(文)에 될 화(化)로 쓴다. 여기서 문(文)은 원래 ‘무늬’를 의미했다. 따라서 문화란 인간 생활의 양식이나 행동 등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무늬처럼 새겨진 것이라 하겠다. 영어로는 ‘culture’로 쓰는데, 익히 아는 대로 ‘경작’을 뜻한다. 이는 문화를 해석하는데 동양과 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일구고 축적해온 일련의 성과와 가치들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유익한 소산이 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농부의 입장에서 풀이해보면 결국 논밭을 일구고 작물을 가꾸어 온 행위가 바로 문화의 산물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그 근본과 핵심에는 농부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는 얘기다. 물론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농경은 가장 중요한 삶의 방식이었기에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살아온 발자취이자 스스로 형성해온 문화를 오늘날의 농부들은 제대로 향유(享有)하고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문화를 앞에서처럼 해석할 때 그러하다. 물론 문화와 가장 밀접한 예술의 향수(享受)를 문화생활로 본다면 그렇지 않은 게 사실이다. 농촌에서, 시골에서 무슨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고 문학을 접할 수 있겠는가? 가끔 지역 축제나 큰 행사가 열릴 때 억지로 따라가서 듣는 대중가요가 고작이다. 읍면동마다 주민자치센터가 있고 평생학습관이나 복지관 등의 문화 프로그램과 취미 교실도 많지만, 거동이 어렵거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 사는 고령의 농부들이 이를 찾아 누리기는 쉽지 않다. 결국 문화생활이란 것도 지역이나 연령, 경제력 등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고 차별과 불평등이 생기는 것이다. 지역 발전과 주민 복지를 위해 성심을 다하겠다고 떠드는 작자들이 제 업적 쌓기에 급급하여 체육관과 문화회관을 짓고 가수들 불러 거창한 축제나 관제 행사만 할 게 아니라, 소외되고 위축된 계층들을 위해 함께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문화정책을 고민하고 펼쳐야만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현명한 농부님들은 사실 이를 바라지 않는다. 소를 키우면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란 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얘기해봐야 듣지도 않으니 포기한 지 오래다. 아울러 우리는 나름의 품위 있고 고고한 문화를 누린다. 더 고상하고 멋진 예술 세계를 즐긴다. 이른 아침의 새소리는 어느 관현악 못지않은 자연의 교향악이요, 앞산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은 그대로 장엄한 우주의 퍼포먼스이다. 바람에 찰랑이는 벼이삭의 군무는 유명 발레 작품을 무색케 한다. 여기저기 피어난 들꽃과 서녘으로 지는 노을, 저녁의 풀벌레 소리, 밤하늘의 달과 별을 인간의 그 어느 작품에 비길 수 있겠는가? 농부는 누구 부럽지 않다. 탓하지도 시샘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아름다운 자연의 무대와 순수미답(純粹未踏)의 캔버스를 망가뜨리지나 말아 달라고 외친다. “냅둬유, 제발!”
    • 사설/칼럼
    • 들풀의 농사만사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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