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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둥구나무 왕버들에게
- 빨개벗고 멱감던 개울가 족히 몇백년은 되었을 그 서너 아름드리 왕버들이 늙어가는 내 몸 앞에 아직도 푸르게 우뚝 서있을 때 시절*마냥 눈물이 난다*시절: 충남 서부 지역의 향토어로, 좀 모자라고 바보스럽다는 뜻 ♣ 옛 고향집에 들렸다가 불현듯 마을 어귀 정자나무가 떠올라 찾아가 보았다. 어릴 때, 그렇게 타고오르고 부벼대던 왕버드나무 2그루가 여전히 늠름하게 거기 버티고 서있었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하고 잊고 지냈던 그 큰 둥구나무가 아직도 청청하게 살아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참 경이롭고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무심했던 나를 잊지 않고 기다려준 친구처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반추해보면 천년 이상을 사는 왕버들이 내 인생 70년도 안된 세월 동안 그 곳에 그대로 자라고 있는 건 당연할 일일 것이다. 적어도 수백년을 살았을테지만 그 나무는 앞으로도 오래 마을을 지켜줄테지. 고마운 나의 추억 둥구나무! 그래 더 오래도록 우뚝하시길. 푸른 잎도 부디 영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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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둥구나무 왕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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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의 바다
- 일몰의 바다 한찬동 나는 시방 서쪽 바다를 향해 서있다 해가 지려 한다 하늘이 붉게 타고 있다 바다는 핏빛이다 몸이 달아오르기 사작한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뜨거워진다 수평선에 금빛 차일이 드리워졌다 이윽고 하늘과 물의 경계가 지워졌다 모두 사라진다 나도 세상도 그렇게 하나가 된다 좋다! ♣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 타는 노을과 붉게 물든 바다는 나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순간,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일몰의 순건, 이 찬란한 하루의 종말. 세상은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나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아, 물아일체(物我一體), 득의(得意)의 순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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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슈베르트에게
- 우리 시대, 슈베르트에게 - 겨울나그네에 붙여 한찬동 가슴 속 심어둔 한 그루 보리수를 찾아 눈길을 걷고 있을 그대에게 책갈피로 오래 감추었던 잎새 하나를 보낸다 무어라 쓰지는 않았어도 새겨진 말뜻을 너는 알리라 해 지기 전 돌아오시라 문틈 사이 흔들리는 촛불을 보고 오시라 난로 지핀 장작이 다 사위기까지 무릎 맞대고 앉아 밤새 울기라도 해보자 이 겨울 홀로 떠난 그대, 젊은 슈베르트여! ♣ 라디오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를 듣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천재. 베에토밴을 흠모했고 빌헬름 뮐러의 시를 좋아했던 그는 요절하기 1년 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에 베에토벤도 뮐러도 생을 마감했다. 실연당한 아픔과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이 가곡의 왕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거나 마음 기댈 나무를 찾아 눈길을 헤맸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이런 슈베르트는 또 있을 것이다. 그에게 오래 간직했던 연모의 엽서 한 장 보내고 싶다. 이 마음 헤아린 그가 내 작은 오두막으로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오래 울기라도 하고 싶다. 서로에게 말은 없어도 그 하룻밤이라도 차가운 가슴 덥혔으면 좋겠다. 젊은 그대여, 이제 그만 머리 위에 눈 털고 그냥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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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슈베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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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우리는 어디서 잠드는가
- 눈보라치는 이 밤에 새들은 어느 숲에서 잠이 드는가 더 춥고 더 어두운 거기 바람 막을 둥지는 있는가? 그게 따순 이불속 같기야 하겠냐만 영영 떠나기 전 순간의 아랫목이라도 된다면 어찌 아니 족하랴 분명, 어디선가 지켜보는 불빛 하나쯤은 있을 테니 ♣ 춥고 눈보라치는 밤, 낮에 공중을 날아다니던 새들은 어디로 가서 안식을 취하는지 궁금했다. 우리 중에도 이 엄동설한에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라면 어떻게든 제 둥지를 찾아 가리라 믿는다. 삶 자체가 그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삶이 비록 오늘로 멈출지라도 누군가는 홑이불 한 장이라도 챙겨주려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디. 성냥불 한 개피라도 피워 비추어주려는 누구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물정모르는 나의 순진한 바람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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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우리는 어디서 잠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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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겨울 일합(一合)
- 장면1, 겨울 일합(一合) 한찬동 꽝꽝 땅이 얼었다 산수유 꽃눈이 멀고 푸른 댓잎이 칼처럼 벼려졌다 들판을 걸어가는 눈먼 검객의 찬 숨소리가 휙, 바람을 가른다 싸락눈이 흩뿌려졌다 모두의 숨이 멎는다 하! 궁창에 불꽃이 핀다 참매 한 마리 치솟아 오른다 눈발 사이 하늘이 푸르다 ♣ 춥고 차가운 겨울 풍경을 무술영화의 한 장면으로 그렸다. 나무들의 꽃눈이 얼어 붙고 대나무 잎이 검객의 칼처럼 날카로운데, 찬바람은 허공을 가르는 칼바람이다. 이때 내리는 싸락눈은 베어져 흩어지는 부나비 같다. 칼이 부딪쳐 불꽃이 피고 마침 참매 한 마리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를 때 천지만물은 잠시 숨이 멋는 듯하다. 언뜻 비치는 하늘은 그래서 더 파랗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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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겨울 일합(一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