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2-04(월)

들풀의 시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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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들풀의 시 마당 기사

  • 혼자다
    혼자다 한찬동 시방 우리는 모두가 혼자다 멀리 서로를 보고 있지만 다 같이 홀로인 게다 아파 누웠거나 서러워 엎드렸거나 하늘 바라 누웠거나 비 오고 바람 부는 오늘 세상 속 우리는 어느 누구의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잊히는가 보다 그래서 사라지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몸부림치는가 보다 나 여기 있다고 여기 살아있다고 ♣ 스스로는 나름 존귀하다고 여기지만, 타인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누구에겐가 기억되고 사랑 받기 원하지만 그건 자기 생각일 뿐이다. 존재를 드러내고자 안간힘을 써봐도 언제나 나약하고 외롭고 서글픈 게 인간이다. 그래서 시방 곁에 있는 그가 소중한 것이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11-13
  • 은행나무의 쓸쓸함에 대하여
    은행나무의 쓸쓸함에 대하여 한찬동 금빛 제 잎들이 밟히고 밟혀 마지막 한 잎까지 짓이겨지도록 은행나무는 가을의 끝자락을 지키고 있었다 마른 가지 끝에는 하늘 푸르고 푸르렀으나 저 편 멀리 무리 짓는 먹구름들 그 사나움을 모를 리 없는 은행나무는 지레 진저리쳐지는 두려움에 다시 온몸을 맡기기로 한다 그렇게 천년을 살아 왔다 그렇게 또 천년을 살 것이다 지독한 쓸쓸함이란 이런 것이다 수천 년 한 자리, 기약없는 붙박이로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지켜 보는 것 홀로 살아 있는 것 앞으로도 그리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 ♣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다. 온전하면 보통 천년을 넘긴다. 이 나무의 절정은 늦가을이다. 샛노란 은행잎은 눈부시기 그지없다. 그러나 금빛 낙엽이 땅에서 밟히는 계절에는 온누리가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그때, 그 스산한 풍경을 지켜주는 것도 또한 은행나무다. 당신 곁에도 한 그루 은행나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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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4
  • 기다림
    기다림 한찬동 그대는 오리라 저리 안간힘인데 오겠노라 달음질인데 해는 차갑고 바람 매섭고 댓잎은 서걱거리고 산이 치솟아 올라도 강물 넘쳐 흘러도 하늘 복판 질러 기어이 오겠다는데 뉘 손사레로 못 오시나 누구 발거리에 막히셨나 나야 억장 찢겨져도 그만이라 꿈으로 그리면 그뿐 불현듯 황혼이 붉듯 홀연히 무지개 뜨듯 그리 오시라 문득 곁에서 웃는 노랑 꽃잎처럼 ♣ 무엇을 기다리는 일은 기대이기도 하고 초조이기도 하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으로 기적을 바라는 것은 어쩌면 고통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바란다. 아무도 오간 적 없는 길가에 문득 수선화가 피듯이. 정녕 올 것이라 믿기에......
    • 들풀의 시 마당
    2023-09-22
  • 여름이 간다
    여름이 간다 한찬동 그토록 뜨겁게 붉던 배롱나무꽃도 이제 그만 지려나 보다 귀청 찢어져라 울더니 쓰르라미도 날개가 지쳤나 보다 여름내 속살에 불질이더니 소낙비 퍼붓듯 눈물 쏟던 그 사람도 손수건 한 조작 남기지 않았구나 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엔 이 여름이겠지 가면 그뿐, 다시 못 올 계절이겠지 장대 끝에 아뜩히 머물렀던 순간이었겠지 철 따라 가자 길 따라 가자 가시 찔린 손끝, 그 핏방울이 대수랴 모깃불 사위듯 가만히 가자 ♣ 무엇이든 끝이 있다. 여름이 아무리 무더워도 가을은 그를 밀어내고 새 계절을 들여온다. 나 또한 한때는 누구에게 소중한 존재였을지 모르나 아주 오래 가진 않을 것이다. 곁에서 성가시기보다 조용히 떠나 잊히는 게 차라리 아름답게 기억되는 방법이리라.
    • 들풀의 시 마당
    2023-09-09
  • 여름 풀밭
    여름 풀밭 한찬동 여름 풀밭은 언제나 비명이 가득하다. 풀무치, 방아깨비, 버마재비가 목숨을 다투는 거기, 언제나 선혈이 낭자하다. 거기에 입 큰 개구리까지 염치 없이 제 몫을 달란다. 그래도 이 풀밭이 핏빛으로 물들지 않는 것은, 한낮엔 몸 숨기고 쉴 그늘이 있고 밤이면 덮고 누울 풀잎이 있어서다. 아침이면 단 이슬을 내려 또 하루를 잇게 하니 여기, 푸른 들을 떠날 수 없다. 그래봐야 곧 철이 바뀌고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텐데, 공중의 날짐승은 그 우아한 천생의 재주로 촌음의 딱한 목숨들을 앗고 있다. 아뿔싸, 더 우월한 놈은 마치 신처럼 천상에서 독극물을 내리고 그도 모자라 미증유의 쇳덩이로 수천 생명의 전원을 삽시간에 갈아 엎는데, 과연 저들의 위에는 그보다 월등한 괴수가 없으려나? 하늘 푸르고 바람은 솔솔한데, 우리 너른 들판은 마르고.... ♣ 여름 풀밭은 그야말로 생명들로 가득하다. 그 생명의 터전에서도 약육강식은 예외가 없어 또 하나 전장(戰場)이기도 하다. 그래도 자연은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뭇 삶의 순환을 이어가게 하는데, 인간은 이 질서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저보다 더 힘센 존재가 나타나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데, 참으로 무모하고 무지한 게 인간이다. 가을이 다가오며 하늘은 맑고 바람결도 좋은데, 풀밭은 그리 파헤쳐지고 있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09-01
  • 아이와 천사
    아이와 천사 한찬동 노란 은행잎을 밟고 오는 아이에게 아내가 건넨 말 "오늘도 축복 많이 받아!" 뜻 모르는 아이는 그저 좋아라고 발걸음 가뿐 가뿐 학교에 가고 그렇게 마주친 등굣길에서 둘은 서로에게 엄마처럼, 딸인듯 손녀처럼 세월 넘어 친구가 되었다는데 훗날 아이는 말하겠지 나만 아는 천사 나만 들은 그 말을 도시락처럼 품고 학교에 갔었다고 마음 속 도시락은 공부시간 내내 따스했다고 나도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야겠다고...... ♣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아내의 실제 이야기이다. 성장 과정에서 들은 말 한마디가 평생 소중하게 간직되고 그로서 인생의 목표가 정해지기도 하는데, 아내도 아이도 마음으로 교감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되고 때로는 사랑이 되는 그런 말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세상은 그런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천사는 이 순간에도 내 곁에 있을지 모른다. 다만 못 볼 뿐이지.
    • 들풀의 시 마당
    2023-08-28
  • 두꺼비를 경외함
    두꺼비를 경외함 한찬동 두꺼비가 하루종일 어디서 무얼하며 지냈는지 나는 모른다. 그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놈이 언제 낮잠을 자든 게으른 걸음으로 음습한 골짜기를 어슬렁거린다 해도 내가 굳이 알 바는 아니다. 그런데, 밤이슬 내려 어둠 축축한 저녁이면 이 놈이 참 거만한 모양으로 행차를 하는 것이었다. 대궐에 입성하는 정승이 무색토록 유유자적, 보무당당, 의기양양 큰 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 그리 느긋하게 길 걸어 보았는가. 어깨 펴고 눈 치켜뜬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두려움 없이 세상 한 복판에 서보았는가. 고개 들어 언제 하늘 한 번 쳐다 보았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커져도 나 오늘 네 땅에, 아니 내 자리에 있으시겠다니. 업이시여, 업이시여! ♣ 두꺼비는 그 생김새가 독특하여 다가가기가 꺼려진다. 사실 몸의 돌기에 독이 있어 만지는 것도 조심해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정서상 이 동물은 복을 상징하는 아주 길하고 친근한 대상이기도 하다. 무섭게 생긴 모습만 아니면 우리 자연 생태계에도 이로운 동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 무렵 나타나는 그 모습은 참 당당하다. 덩치가 저보다 수백배 더 큰 개가 옆에 있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슬렁어슬렁 제 갈길을 간다. 우리 같은 소인배가 흉내내지 못할 천생의 의연함이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08-21
  • 나비잠
    나비잠 한찬동 힘껏 두 팔을 뻗어 은빛 사다리를 타고 하늘 오르는 꿈 키 큰 나무나 앉은뱅이 풀꽃이 있는 초원 그곳에서 구름 속의 그네를 타는 꿈 깨지 않아도 좋을 우리 아이의 잠 나비처럼, 팔랑이는, ♣ 어린아이들이 위로 팔을 뻗어 자는 나비잠은 천사를 연상케 한다. 아이는 꿈 속에서 천상의 세계를 노닐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는 잠을 자고 꿈을 꾸며 자란다. 우리 사는 세상이 그리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누리에서 우리 아이들 모두가 탈없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나이들어 가는 사람들의 여린 소망이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08-15
  • 금이빨 삽니다
    금이빨 삽니다 한찬동 늙은 구두수선공이 금이빨을 사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썩은 이빨 빼낸 자리 누렇게 반짝이다 다시 쓸모 없어진 그걸 무엇에 쓰겠다는 것인지 세상의 온갖 고깃덩이를 씹으며 빛 바래진 그 금쪼가리로 대체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그저 다른 이 발이나 편케 해주면 좋을 것을 이 늙은이는 또 누구의 아가리에 하릴없는 탐욕을 심으려는지...... 그러나, 오늘도 그의 오래된 구둣방은 문이 열리지 않았다 ♣ 좀체로 구둣방을 보기 힘든 요즘, 천안 버스터미널 근처에 구두수선집이 있다. 거기, 어울리지 않게 금이빨을 산다는 광고글이 쓰여 있었다. 구두를 고쳐 신으려는 사람은 줄어들고 금이빨이라도 사서 작은 돈벌이를 해보겠다는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서글픈 것은, 금이빨을 파는 사람도 구두를 고치려는 사람도, 심지어 그 늙은 구두장인도 이제는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08-07
  • 꽃잎 진 자리
    꽃잎 진 자리 한찬동 꽃잎이 진 자리엔 언제나 상처가 있다 온 생애 가장 빛나던 날을 보내고 웅크려 몸을 접을 때 여미는 상처 끝에는 농도 짙은 눈물이 있다 그 눈물 여물지도 못하면 내 이 꽃은 누가 추억이나 할까 애초, 애써 피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 누구에게나 화양연화는 있다. 그러나 인생 중 가장 찬란했던 그 시절은 대개 짧디짧다. 그 짧은 순간을 보내고 이내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로 인한 상처는 누구의 것일까? 눈물이 슬픔의 결정체라면 이로써 상처는 닦일 수 있을까? 그도 금세 잊혀지고 말 일. 슬프게 말하자면, 사는 것, 사는 모두가 다 부질없다. 꾸는 꿈도 깨는 꿈도 모두가 다 부질없다.
    • 들풀의 시 마당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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