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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집과 탄소중립이 무슨 상관?
-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 [기고 야초 한찬동]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오후, 작은 모임이 있어 가까운 족발집을 찾았다. 때는 막 휴식 시간이 끝난 5시 무렵이라 식당 안에는 우리 일행 말고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도 젊은 주인 내외는 미리 주문해 온 음식들을 포장하여 배달 준비를 하느라 무척이나 분주했다. 소규모 영업이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저렇게 바쁜 걸 보니 장사가 꽤 잘 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던 누군가가 “사장님! 그리 배달이 많으니 돈 많이 벌겄슈?”하고 웃음으로 말을 건넸다. 이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예 나쁘진 않아요. 그런데 우리 집은 하루 판매량을 정해 놓고 그 이상은 주문을 받지 않아요. 남아 버리는 음식이 있으면 안되니까요.” 착하고 앳돼 보이는 여주인의 영업방식은, 분명 여느 식당과는 다른 것이었다. 무조건 많은 양을 팔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재료를 준비해 놓았다가 소진하지 못하여 쓰레기로 배출하는 사례가 보통이니 말이다. 또 한 가지. 소위 가성비가 좋다 하여 가끔 들렀던 우리 일행은 그날도 무심코 ‘족발 보쌈 모둠 세트’를 주문했다. 보통 4~5명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차림이었다.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집은 양이 많아서 그거 시키면 남아요. 그냥 족발 세트만 하셔도 충분할 거예요.” 무더운 여름, 맛있는 족발과 함께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려던 그날의 모임이 더없이 유쾌하였음은 물론이다. 기후변화로 온 지구가 몸살을 앓고 인간이 버리는 각종 쓰레기로 환경 파괴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는 뒤늦게나마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다. 유엔까지 나서서 2030년까지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정하고 전(全)지구적 실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상응하는 국가의 목표를 정해 놓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각자의 의제를 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슬로건을 내걸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열쇠는 다름아닌 우리 개개인이 쥐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일 저지른 자가 해결해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나는 일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 ‘발우공양(鉢盂供養)’식 식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절에서 행하는 스님들의 전통 식사 의례인데, 밥과 국, 반찬과 물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사용하여 음식을 남기지 않고 평등하게 나누어 먹으며, 음식에 담긴 자연과 노동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을 담고 있다. 고상할 필요도 없다. 그냥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적당히 시키고 남기지 않으면 된다. 여기에 저탄소식생활 운운하며 구구절절 해설을 하자면 오늘 해가 저물 터. 누구는 그래도 양반 밥상이라면 상다리 부러지게 푸짐하게 차리고 함포고복(含哺鼓腹-배 부르게 먹고 북처럼 배를 두드린다는 말)해야 한다지만, 이건 봉건주의 시대 탐관오리들이 거지나 하인이 남은 찌꺼기라도 먹게 해야한다는 저열한 가식(假飾)이다. 먹을 게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하여 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오늘 우리의 식생활은 너무도 게걸스럽지 않은가? 앞서 예를 든 족발집이 양을 조절하듯, 알맞게 시켜서 밥값도 줄이고 식사 후 그릇도 깨끗이 비워 설거지도 쉽게 해드리면 어찌 아니 좋겠는가? 자칭 만물의 영장이요 이토록 존엄한 인간이, 배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고 과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동물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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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집과 탄소중립이 무슨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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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 [게르니카 : 1937년 파블로 피카소의 회화 작품] 야만과 분열을 넘어선 문명과 화해의 시대, 21세기. 그러나 우리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눈앞에서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애먼 나라를 공격하여 문명을 파괴하고 평화를 깨트리고 있다. 한때 오랜 냉전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를 이루어 가는가 싶더니, 정당성 없는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있다. 명분이야 왜 없을까마는 이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설득력이 없으니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해야 독보적 패권국의 대통령을 국제 깡패나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겠는가? 겉으로야 당연히 인류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기적이며 일방적 욕구를 쟁취하려는 속셈을 누가 모르겠는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그들의 국부(國父)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미국인들은 잊었단 말인가? 자국민들조차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도대체 이 지구 파탄의 불놀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날의 전쟁이 예전처럼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인명을 앗아가거나 도시를 파괴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 염려가 조금은 덜할 것이다. 그러나 가공할 위력을 가진 첨단 무기와 대량 살상을 유발할 수 있는 화생방무기나 핵무기까지 동원되는 현대전은, 그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하나가 된 지구촌이 함께 지키고 가꾸어 온 이 아름다운 지구가 어떤 황폐한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미래 세대가 사용할 환경·사회·경제적 자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자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가치와 목표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방해하려는 트럼프의 저의는 일찍이 감지된 바 있다. 2017년 1기 집권 당시 미국은 이미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었다. 세계 국가 중 탄소배출량 2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는 무책임하게도 2기 취임 첫날인 2025년 1월 20일에 파리 기후 협약에서 재탈퇴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화석연료 감축이 미국 경제와 일자리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글로벌 기후 대응 체계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발전을 훼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구실로도 전쟁은 미화될 수 없다. 푸틴도 트럼프도, 그들은 인류 공동의 적이요 글로벌 범죄자다. 곳곳에서 내전을 일으켜 선량한 국민들의 생명을 빼앗고 문명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는 장본인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전장(戰場)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세계인 모두가 일어나 모든 국제적 수단을 다해 규탄하고 응징해야 한다. 이것이 곧 국제 정의의 구현이요 참된 평화의 실현이다. 유엔지속가능목표 16번째 의제에는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의 폭력 및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대폭 감소시킨다.’는 조항이 있다. 어느 누구든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 존엄한 목숨을 까닭도 없이 빼앗길 수 없다. 아무도 타인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앗아가서는 안 된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범죄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조속히 종식되어야 하는 이유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유엔지속가능발전 목표의 슬로건일진대, 어찌하여 오늘도 무고한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가야 하는가?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의 당사국들은 이제라도 무릎 꿇고 속죄하며 죽음의 화염을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와 지구를 지키고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 길이다. 물론 내 작은 이 외침이 저들에게 들릴 리 만무하지만, 만물과 공생하는 자연의 한 객체로서 가늘게 나마 목소리를 내보는 것이다. [글쓴이 : 야초 한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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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를 기다리며
- [글쓴이 야초 한찬동]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 이름 지어진 영춘화(迎春花)는 중국 원산이지만 우리 꽃 개나리와 유사하여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개나리처럼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이제 곧 그 꽃이 피어 진달래, 산수유 등과 함께 다투어 봄을 맞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매화며 복수초는 이미 꽃망울을 맺고 봄나들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렇듯 봄꽃들이 생기 넘치는 새봄을 위해 들떠 있는 사이, 농부들의 마음은 닥쳐온 농사로 쫓기고 있다. 고르지 못한 날씨 탓으로 제때 하지 못했던 일들이 첩첩으로 쌓였으니 몸과 마음이 다급하기만 하다. 거름을 내고 논밭을 갈아 작물 심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추웠다 더웠다 때아니게 눈까지 내렸으니 시기를 놓친 일이 적지 않다. 게다가 나라 안팎은 왜 그리 소란스러운지.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가 내란죄 혐의를 받고 헌법을 유린하여 파면의 위기에 처해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한 나라의 대통령은 제 마음 가는 대로 다른 나라들을 겁박하여 다시 제국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정말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영춘만개(迎春滿開)의 함성을 잠재우고 있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정작 백성을 구제해야 할 위정자들은 저희 개밥그릇이나 챙기려 벌레만도 못한 짓거리를 계속하고 있다. 그 엄동설한을 비닐 이불 한 장으로 견뎌내며 제발 살게 좀 해달라고 절규하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권력의 부스러기나 노리며 굶주린 개처럼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죄지은 놈들은 도리어 애국자 행세고 위선자들은 짐짓 성인군자인양 날뛴다. 더없이 어리석고 무식한 것들이 감히 현자를 계몽하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이제 분노를 넘어 절망이다. 몸부림을 쳐봐야 부질없다 생각하니 급기야 자포자기 심정이다. 애당초 기대할 게 없었으나 이건 정말 꼴이 아니다. 그래서 꽃들도 피기를 저어하는가? 이 험하고 추한 꼴에 꽃은 피워 무엇하냐며 망설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섭리는 결코 거스를 수 없다. 참았던 울부짖음은 더 큰 울림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 자신의 치부와 더러운 욕망을 숨기고 궤변과 억지, 땅속의 지렁이도 치를 떨게 할 망언망동으로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자들은 도도한 역사의 물결과 자연의 힘 앞에 반드시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화들짝 영춘화가 피듯, 그렇게 봄이 오고 세상도 환히 빛날 것이다. 그때는 땅속에서 나와 아직 뛰어보지 못한 개구리도, 힘없이 죽어 사는 무지렁이 농부도 의기양양, 기세등등 득의(得意)의 포효를 내지르리라. 꼭 그리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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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를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