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르니카 : 1937년 파블로 피카소의 회화 작품]
야만과 분열을 넘어선 문명과 화해의 시대, 21세기. 그러나 우리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눈앞에서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애먼 나라를 공격하여 문명을 파괴하고 평화를 깨트리고 있다. 한때 오랜 냉전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를 이루어 가는가 싶더니, 정당성 없는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있다. 명분이야 왜 없을까마는 이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설득력이 없으니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해야 독보적 패권국의 대통령을 국제 깡패나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있겠는가? 겉으로야 당연히 인류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기적이며 일방적 욕구를 쟁취하려는 속셈을 누가 모르겠는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는 그들의 국부(國父)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미국인들은 잊었단 말인가? 자국민들조차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도대체 이 지구 파탄의 불놀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오늘날의 전쟁이 예전처럼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인명을 앗아가거나 도시를 파괴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 염려가 조금은 덜할 것이다. 그러나 가공할 위력을 가진 첨단 무기와 대량 살상을 유발할 수 있는 화생방무기나 핵무기까지 동원되는 현대전은, 그야말로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하나가 된 지구촌이 함께 지키고 가꾸어 온 이 아름다운 지구가 어떤 황폐한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미래 세대가 사용할 환경·사회·경제적 자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자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가치와 목표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방해하려는 트럼프의 저의는 일찍이 감지된 바 있다. 2017년 1기 집권 당시 미국은 이미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었다. 세계 국가 중 탄소배출량 2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는 무책임하게도 2기 취임 첫날인 2025년 1월 20일에 파리 기후 협약에서 재탈퇴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화석연료 감축이 미국 경제와 일자리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글로벌 기후 대응 체계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발전을 훼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구실로도 전쟁은 미화될 수 없다. 푸틴도 트럼프도, 그들은 인류 공동의 적이요 글로벌 범죄자다. 곳곳에서 내전을 일으켜 선량한 국민들의 생명을 빼앗고 문명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는 장본인들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전장(戰場)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세계인 모두가 일어나 모든 국제적 수단을 다해 규탄하고 응징해야 한다. 이것이 곧 국제 정의의 구현이요 참된 평화의 실현이다.
유엔지속가능목표 16번째 의제에는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의 폭력 및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대폭 감소시킨다.’는 조항이 있다. 어느 누구든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상, 그 존엄한 목숨을 까닭도 없이 빼앗길 수 없다. 아무도 타인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앗아가서는 안 된다.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에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범죄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조속히 종식되어야 하는 이유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유엔지속가능발전 목표의 슬로건일진대, 어찌하여 오늘도 무고한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가야 하는가?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의 당사국들은 이제라도 무릎 꿇고 속죄하며 죽음의 화염을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 인류와 지구를 지키고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는 길이다. 물론 내 작은 이 외침이 저들에게 들릴 리 만무하지만, 만물과 공생하는 자연의 한 객체로서 가늘게 나마 목소리를 내보는 것이다.
[글쓴이 : 야초 한찬동]


